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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새 정부를 향한 숭례문의 외침

새 정부를 향한 숭례문의 외침
“개발성장주의에 멍드는 민심의 소리 잘 들어야”
경남도민일보 2008년 02월 19일 (화) 02:03:15 정부권 pabi7@naver.com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개국한 일등공신 정도전은 도성의 사대문을 흥인문(興仁門), 돈의문(敦義門), 숭례문(崇禮門,) 숙청문(肅淸門)으로 정하여 유학의 근본인 인의예지를 통해 왕도정치(王道政治)를 구현하고자했다. 옛날 맹자는 사단설(四端設)을 통해 왕도정치를 설파한바, 이는 군왕이 차마하지 못하는 정치 곧 백성을 우러러보는 정치를 펼침으로써 천하가 태평하리라는 것이었다. 사단(四端)이란 인의예지에 이르는 네 가지 단서인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으로 왕도정치의 근원이다.

신흥국 조선은 사단을 통해 오랜 패도정치를 청산하고 민본주의 정치를 추구하는 건국초기의 혁명정신을 바로 서울의 사대문 이름에 그대로 표현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백성들이 자주 드나드는 정문인 남대문의 명칭을 숭례문으로 정하고, 다른 문과 달리 현액을 수직으로 세워달아 백성들을 예로써 서서 맞이하겠다는 민본사상의 극치를 잘 보여줬다.

그런데 600여 년의 세월을 그 자리에 서서 백성들의 애환을 지켜보던 숭례문이 어느 날 화염에 휩싸였다. 왜구의 말발굽과 동족상잔의 포화 속에서도 자세를 흩뜨리지 않던 숭례문이 어처구니없게도 70 노인의 손에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대한민국 정치·사회·문화의 중심부 서울 한복판에서 말없이 예로써 사양지심의 미덕을 설파하던 숭례문이 불타버리고 만 것이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 시대가 열린다. 이명박 씨는 입지전적인 삶을 통해 젊은 나이에 우리나라 굴지의 건설회사 회장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TV 드라마로도 유명한 그의 인생역정은 정치에서도 그대로 계승됐다. 그는 서울시장 재임 시 청계천을 복원하고 버스전용차로로 교통질서를 개편하는 등 불도저식 행정으로 또 한편의 드라마를 국민들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드라마는 그가 청와대에 입성하기 직전에 숭례문 화재로 절정에 달했다.

문화재청의 책임도 클 것이다. 관리청인 서울시 중구청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국보1호를 잃은 책임은 서울시장 시절 자신의 전시행정을 돋보이기 위해 안전대책 부재에 대한 비판을 무릅쓰고 불도저식 개방을 강행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가장 크다. 그런데 지금 누구도 그의 책임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의 가벼운 입놀림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던 언론도 조용하다.

숭례문은 이제 없다. 그러나 숭례문은 한갓 노인의 손에 덧없이 사라진 것이 아닐지 모른다. 어쩌면 예를 잃고 백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통치자들을 향해 스스로 자신을 태워 경고하는 건지도 모른다. 토건정권의 면모를 벌써부터 과시하는 이명박 정부의 오만함을 질타하는 건지도 모른다. 개발지상주의에 떠밀려 몇 푼의 보상금으로 생계의 터전을 잃고 울부짖는 백성들의 고통을 대신한 항변인지도 모른다.

하필 숭례문을 불태운 희대의 방화범이 개발로 수용된 토지보상금에 불만을 품은 황혼의 노인이란 사실이 예사롭게만 들리지 않는다. 이런 때에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경부운하의 중심에 위치한 문경 봉암사 스님들로부터 경부운하를 강행할 경우 조계종과의 전쟁을 치러야할 것이란 경고의 목소리가 들린다. 한국조계종의 근·현대사적 맥을 새롭게 정립한 봉암사결사의 산실이며 구산선문(九山禪門)으로 불교 최대성지인 봉암사에서 산문을 폐쇄하고 면벽수도에만 정진하던 스님들이 던지는 결코 예사롭지 않은 외침이 새 정부의 귀에는 과연 어떤 소리로 들릴까 궁금하다.

/정부권(마산시 월영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