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 애 엄마한테 급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애가 교통사고가 났다는 것이었습니다.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하지만, 자세히 알 수가 없으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습니다.

  괜히 아이 엄마한테 신경질을 부린 것 같기도 합니다. 아이 엄마도  자세히는 모르고  그저 전화를 받았는데 지금 병원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랴부랴 병원으로 갔습니다.

  아이는 병원로비 의자에 멀쩡하게 앉아있었습니다. 사고가 난 승용차의 아저씨도 함께 있더군요. 아마 사고가 나자마자 바로 차에 태워 병원으로 달려왔나 봅니다.
    

  아이는 생각 밖으로 다친 데는 고사하고 긁힌 자국 하나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라면 사고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사고가 난 경위는 이랬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자전거를 타고 나오던 우리 아이를 학교 앞을 지나가던 승용차가 미처 발견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정문 옆에 큰 트럭이 한 대 주차해있었던 터라 잘 보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서로 놀라서 급히 브레이크를 잡았을 테고 자전거는 당연히 쓰러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승용차도 자전거도 속도를 별로 내지 않았던 터라 큰 사고는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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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 아저씨는 부랴부랴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X-레이까지 찍고 부산을 떨었나 봅니다. 그 아저씨는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시더군요.

  멀쩡한 아들 녀석을 보니 도리어 제가 미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그래도 놀랐을 텐데 그러면 안 되지 싶어 “정말 괜찮아?” 하고 물어보는 걸로 대신했습니다.

  녀석도 미안했던지, “괜찮다. 봐라. 하나도 안 다쳤다. 긁힌 데도 없다.” 하면서 일어서서 앞뒤로 확인시켜주는 것이었습니다. “자전거는 괜찮나?” 하고 물었더니 자전거도 멀쩡하다면서 단지 핸들이 조금 돌아갔는데 그건 금방 돌릴 수 있다고 강변하듯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승용차 아저씨에게도 바쁘실 텐데 어서 가시라고 말씀드리고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나섰습니다. 그 아저씨는 계속 미안해하며 아이에게 밥이라도 한 그릇 사야 되는 게 아니냐며 따라왔지만, 제가 손사래를 치며 거절해 돌려보냈습니다.

  참 착한  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이런 사고가 나면 아이에게 괜찮나 물어보고 다음부턴 조심해라 하고 훈계한 다음 사라지는 것이 보통의 인정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학교 앞에 가보니 자전거는 문방구 아주머니가 한쪽 옆에 잘 세워놓았더군요. 역시 아이 말대로 핸들이 조금 돌아가 있었고 쉽게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도 자전거도 멀쩡하니 천만 다행입니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어디 혹시 혹이 났을지도 모르고 멍이 들었을지도 모르니까 아빠하고 목욕탕이나 갈까? 그러면 금방 풀릴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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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아이는 완강하게(!) 싫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는 놀다가 학원 갈 거니까 먼저 가라는 것입니다. 아니, 녀석도 싫으면 싫은 것이지 왜 이렇게 거세게 거부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군…. 가만 그러고 보니 녀석이 저하고 목욕탕 안간지가 벌써 반년이 넘었습니다.

  그전에는 목욕탕을 마치 수영장 가듯 생각하며 사흘이 멀다고 목욕탕 가자 조르던 녀석인데 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같이 가자고 해도 싫다며 자기는 집에서 샤워를 하는 게 더 좋다고 말하던 게 기억납니다.

  아, 이거 괜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녀석에게 어떤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아니면 혹시? 그러나 어느 쪽이든 별로 내키지 않습니다. 그저 버림받은 기분입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질풍노도’의 시대는 결국 오고야마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 것을요….

  2009. 1. 6.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