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밤,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광고화면 상단 오른쪽에 박중훈이란 이름을 보았네요. 그래서 채널을 고정시켰습니다. 박중훈이 아니었다면 배철수가 나오는 콘서트 7080을 보려고 했었지요. 배철수 프로 볼만 하지요. 우리 세대에 딱 맞는 구성에다 배철수는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가수입니다. 중학생 때부터요. 락벤드 '활주로' 대단했죠.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그렇지만 아무리 배철수 아저씨라도 오늘은 양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또 박중훈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게다가 오늘 게스트가 장동건입니다. 배철수는 제겐 10년 이상이나 차이나는 아저씨에다 박중훈도 만만지 않지만, 장동건은 저보다 몇 살 어리죠. 또 엎어치기로 잘 생긴데다가 연기도 잘하고 인기도 좋으니 정말 짜증(?)나는 인물입니다. 이 장동건이 TV 토크쇼에 게스트로 나온다니 안 볼수 없지요. 이런 기회가 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사진=미디어다음 miru@osen.co.kr


박중훈과 장동건, 매력적인 MC와 게스트

박중훈, 살을 많이 뺐군요. 막상 살을 빼고 보니 얄밉거나 코믹한 인상은 간데없이 지적이고 중후한 교양이 철철 넘칩니다. 사실은 그런 본래 박중훈의 매력을 좋아했지만, 오늘 본 새로운 모습도 매력적입니다. 믿음직한 인상입니다. 체중 감량한 보람이 있어 보입니다. 실제 감량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노력의 대가가 확실히 파격적인 결과를 창출한 듯합니다. 

아마 원래 이 프로는 시사교양프로였던 것 같습니다. 처음엔 연예프로인 줄 알고 보기 시작했는데, 마치는 인사말에서 박중훈이 한 멘트로 보아 그런 짐작을 하게 했습니다. 정확하게 기억은 못하지만 대충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은 오늘 3당 원내대표를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요즘 워낙 시국도 바쁘고 하시는 일도 많고 하다 보니… 다음 주 아니면 그 다음이라도 기회가 되는대로 꼭 이분들을 모셔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도 3당 중 어느 한 당에서, 또는 모든 당에서 출연을 고사했거나 사정을 들어 연기했을 가능성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박중훈이 말한 3당이란 게 어느 당인지도 확실히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한나라당 민주당 자유선진당 조합? 아니면, 한나라당 민주당 민노당 조합? 대충 둘 중 하나겠지요. 어떻든 정치인들 TV 출연도 고사할 만큼 바쁘시다니 다행입니다.

원래는 3당 대표가 출연키로?

며칠 전,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사실상 야합에 의해 감세법안도 통과시켰으니 이제 부자들의 고통을 덜어줄 실무적이고 구체적인 후속 조치로 바쁘신가 보지요. 그나저나 오랜만에 정치인들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덕분에 장동건 얼굴 한참 보게 생겼네요. 원래 일급 스타들 신비주의 관리 전략 탓에 스크린 밖에선 편하게 보기가 쉽지 않잖아요? 오늘은 예외군요.

사실 장동건은 TV 연예프로에 잘 안 나오지요. 글쎄 저는 일단 나오는 거 한 번도 못 봤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나왔군요. 그것도 박중훈 쇼의 첫 게스트로 말입니다. 박중훈 쇼가 첫 스타트부터 거물급을 물어 왔군요. 그러나 진행하는 내내 불안했습니다. 불안했던 것은 제가 박중훈이나 장동건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지요. 안 그러면 채널 돌려버리면 그만이지 무엇 때문에 불안에 떨었겠어요?

준비가 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질문도 좀 그렇고요. 제 짐작이지만, 급하게 섭외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아마도 이것도 짐작이지만, 3당 대표 출연이 무산된 탓도 있었겠지요. 토크 내용으로 보아 박중훈과 장동건의 사이가 보통 친밀한 정도가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음~ 박중훈이 소개한 책을, 그것도 지식 습득용 전문 서적을 장동건이 열심히 읽었다는 대목에선 느낌이 확신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장동건의 진솔하고 선한 면모를 편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장동건의 진솔한 면모를 스크린이 아니라 토크쇼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습니다. 장동건의 매력을 모습만이 아니라 냄새까지 함께 맡으면서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행운이지요. 좀 어설픈 대화가 오가긴 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진솔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외로워서 잠을 잘 못 자겠다. 그래서 맥주 세 캔 정도 마시고 잠이 든다.”고 말할 땐 연민의 정도 느껴졌습니다. 연년생인 동생이 자식 낳고 알콩달콩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내가 뭘 하고 있나, 이게 제대로 사는 건가 하는 회의도 든다”고 말하는 장동건에게선 진솔함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너무 늦게 낳아 아이에게 미안할 거 같다는 말을 할 땐 정말 선한 사람이라는 걸 알겠더군요.

번쩍이는 색상과 빠른 재치와 익살, 속도에 익숙한 분들에겐 지루한 불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태극기 휘날리며'와 '태풍'에서 강인한 면모의 완숙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장동건의 부드럽고 수줍은 속내를 소파에 몸을 기대고 편안하게 만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오늘 박중훈 쇼의 스타트는 성공했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펑크를 내신 3당 원내 대표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 듯싶습니다. 더불어 어수선한 대한민국 정치 현실에도 말이지요. 장동건 오래 보는 게 정신건강에 훨씬 이롭거든요. 그러나 다음 주부터는 보다 본격적이고 진지한 시사교양 토크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보다 진지하고 본격적인 시사토크쇼로 발전하길

물론 오늘의 박중훈이 보여준 새로운 지적이고 고상한 매력은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더해 박중훈 본래의 매력, 익살과 재치도 보고 싶습니다. 『박중훈 쇼, 대한민국 일요일밤』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KBS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도 보여주시고요.     

그리고, 장동건 씨도 빨리 장가가세요. 노래도 잘 부르던데, 벌써 트로트가 좋아진다면서요? 지나고 보면 세월이 너무 짧답니다.

2008. 12. 14.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