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마당에는 감나무가 한그루 있습니다. 이미 겨울준비를 모두 끝낸 감나무에는 홍시 하나가 덩그러니 매달려있답니다. 새가 쪼아 먹었는지 절반쯤 잘려나갔습니다. 그런데도 감은 그대로 나무에 매달려 빠알간 빛을 잃지 않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어릴 적 생각이 납니다. 마을에는 누구네 집 할 거 없이 감나무가 한 그루씩은 다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 집에도 감나무가 있었습니다. 여름을 부르는 실바람에 떨어진 감꽃들로 흐드러진 뒤뜰에는 채 자라지 못한 ‘새끼감’들이 함께 나뒹굴었었지요.

감꽃을 주워 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다 걸고 떨어진 ‘새끼감’을 주워 입에 넣으면 달큼하면서 새큼한 싱싱함이 입안에 감돌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건만 그 맛만큼은 아직도 또렷합니다. 

▲ 우리 집 마당 감나무에 달린 감. 새가 쪼아 먹은 듯한데, 정말 정교하죠? 어떻게 안 떨어뜨렸을까요?


어린 시절 동무들 생각이 간절합니다. 감나무는 우리들의 놀이터였습니다. 한 친구 녀석은 소머즈 흉내를 내다가 감나무 위에서 떨어져 다리 뼈가 부러지고 허리를 다쳤었지요. 그 친구는 결국 1년 후배가 되어 우리가 졸업하던 날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를 목청껏 불렀답니다. 

겨울이면 자치기와 구슬치기로 손등이 갈라지는 것도 잊고 흙과 씨름하는 데 정신 팔린 우리들 머리위에서 키가 훌쩍한 메마른 감나무는 빠알간 홍시를 금방이라도 떨어뜨릴 듯 매달고 섰었습니다. 어른들은 새들도 먹어야 산다며 감을 다 따지 않고 꼭 몇 개씩은 남겨 두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살던 동네는 예로부터 무지하게도 가난한 동네였습니다. 우리 마을 이름은 저부실이라고 했습니다. 국민학교가 있던 마을은 벌방걸, 면소재지 인근 중학교가 있던 마을 이름은 연작살(燕雀殺)이었습니다. 제비와 참새도 먹이를 구하지 못하여 죽었다는 마을이죠.

마을의 북쪽으로는 하늘재와 새재가 버티고 있습니다. 그 아래로도 여러 재들이 있어 예부터 숱한 조상들의 가쁜 숨결을 토하도록 하던 곳입니다. 그 중에는 버리미기재라는 고개도 있습니다. 이름만으로도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재를 넘던 조상들의 피땀 어린 애환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 이미지=한겨레신문



이 고개들에는 박달나무와 머루가 지천이었는데, 홍두깨는 이곳에서 나는 박달로 만들어야 제격이었습니다. 견훤의 생부 아자개가 머루주를 담아 왕건에게 내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내가 어릴 때도 한 시간만 산을 뛰어다니면 쌀부대에 머루가 하나 가득이었습니다. 그러면 하얀 겨울에 우리 아버지는 진하게 익은 머루주에 불콰한 얼굴로 “두만강 푸른물에~”를 부르곤 하셨지요.  

오늘 감나무에 덩그러니 매달려있는 감을 보노라니 옛 생각이 간절하군요. 집집마다 키가 훌쩍한 메마른 감나무들이 새들에게 줄 먹잇감을 매달고 있는 풍경이 아련히 다가옵니다. 자치기를 하다가 하늘을 향해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훔칠 때면 마치 빠알갛게 익은 홍시들이 하늘에 덩실덩실 떠있는 것처럼 보였었지요.  

아! 그립습니다. 그리운 시절 그 머스마들과 지지배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보고 싶습니다. 

2008. 12. 12.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