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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김일성장군 아니면 다 굶어죽었시요

오래전에 알고 지내던 중국 흑룡강성에서 온 동포가 있었다. 나는 그의 가족들과 아주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종종 식사를 함께 하거나 술을 마셨다. 그들은 한 민족이었지만 우리와는 많은 부분에서 관심사가 달랐다. 예컨대 그들은 우리 민족의 역사보다는 중국역사를 더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대화할 때 주로 중국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러면 그들이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초한지, 삼국지 이야기에다 중원오악이 어떻고 동정호가 어떻고 절강성의 서호와 서시 이야기며 뭐 이런 것들을 늘어놓으면 와, 우리보다 중국을 더 잘 아네, 이러면서 호감을 표시하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비록 조선민족이지만 정체성은 중국인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고 피부로 느끼고 있던 터였다. 그들은 정말 중국인이었으며 그것에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막히는 부분이 있었는데, 아니 사실은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지만, 바로 이것이었다.

 

우리 중국은 모택동 주석이 없었으면 다 굶어죽었시요.”

 

그 가족 중에 어머니는 원래 함경도에서 살다 흑룡강으로 이주한 분이었는데, 그러면 그의 동생(내가 잘 아는 친구의 외삼촌)이 끼어들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북한도 마찬가지야요. 김일성 장군 없었시모 다 굶어죽었을 끼요.”

 

모택동이든 김일성이든 공과 과가 있을 터인데 어쩜 저리도 완고한 충성심을 보일 수 있을까. 나는 확신에 찬 그들의 얼굴표정과 어조에 전율했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일일뿐더러 오랜 세월 형성된 그들의 관념을 바꾼다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니까.

 

그리고 한편 그것은 우리도 그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특히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오지 않았던가.

 

박정희 대통령 없었으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밥 먹고 살 수가 있나. 다 굶어죽었지. .”

 

북한의 정규택 화백이 그렸다는 <한 전사의 건강을 념려하시어>라는 그림이다. 어떤 느낌이 드시는가. 감동? 아니면 역겨움?

그런데 어젯밤 나는 오래전의 그 기억을 되살리는 경험을 다시 할 수 있었다. 도계동에서 1차 술 한잔하고 자리를 옮겨 사림동에서 2차로 마시고 거나하게 취한 채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가 자꾸 말을 시키는 것이다.

 

, 정말 나라가 큰일이죠. 메르스 때문에 상남동에 개미새끼 한 마리 없슴미더. 이래갖고 되겠습니꺼. 대통령이고 머시고 하는 일이 아아들 장난도 아이고 뭐하는 긴지 참 한심합미더.”

 

그렇죠, 그렇고말고요. 안 그래도 역병 옮을까 걱정되는 터에 말대꾸하기 싫었지만 그가 옳은 말을 하는 바람에 맞습미더, 맞습미더하면서 맞장구를 치면서 수긍을 해주었다. 그러나 아뿔싸! 그 택시기사가 결정적 배신의 한방을 날린다.

 

정치는 전두환이가 잘 했습미더. 확 후두러 잡아야 하는데. 아새끼들 상남동서 담배 피고 해샀는 거 보모 속에서 치밀어오르는데 마이 참슴미더. 우리나라는 이 민족성이 안 되는 기라예. 마 박정희하고 전두환이 같은 지도자가 나서서 확 후아 잡아야 합미더. 진짜 인물 없습미더.”

 

, 국경을 초월해 독재의 흔적이란 이토록 무섭고 질긴 것인가. 역시 민주주의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