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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KTX 여승무원들의 값진 승리

KTX 여승무원들이 기나긴 싸움에서 중요한 승리 하나를 일궈냈습니다. 12월 2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는 KTX 여승무원들이 철도공사 직원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동안 KTX 열차승무지부장 등 KTX 해고 승무원 34명은 법원에 철도공사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보전 및 임금지급 가처분 신청’을 내고 2년여에 걸친 투쟁을 해왔습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철도공사가 여승무원들로부터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받고, 임금을 포함한 제반 근로조건을 정했다고 본다”고 밝히면서, 그렇다면 이는 “철도공사가 KTX 승무원들을 직접 채용한 것과 같은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하였습니다.

KTX 투쟁, 부당한 차별과 탄압에 대한 저항의 상징

지난 2년여 동안 KTX 여승무원들은 소송을 진행하는 한편, 삭발투쟁, 쇠사슬 침묵농성은 물론이고 40M 높이의 철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이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생존권을 향한 이들의 몸부림은 우리사회의 부당한 차별과 탄압에 대한 상징적 저항이었습니다. 법원의 이번 결정은 노무비 절감과 노동통제의 수단으로 악용되어온 근로자파견제(외주위탁)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9월 서울역사 안에서 쇠사슬을 감고 농성을 벌였던 KTX 승무원들 (사진=레디앙)

과거 우리나라는 근로기준법에서 노동자와 사용자의 근로계약에 개입하여 이익을 취하는 행위를 중간착취로 규정하여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도입된 근로자파견법은 직접고용의 예외를 인정하고 중간착취를 정당한 행위로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이어 인력만 관리하는 회사를 설립해 여기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임금 중 일부를 수수료로 챙기는 형태의 근로자파견회사가 도처에 생겨났습니다.

외주위탁에 의한 중간착취의 대표적인 케이스 중 하나가 경비원들입니다. 예를 들면 창원공단에는 수많은 공장들이 있습니다. 이들 공장들에는 작은 규모라 하더라도 최소 10명 내외의 경비원들이 필요합니다. 대공장 같은 경우엔 훨씬 많은 수의 경비원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들이 하는 일은 보통 주야 맞교대로 근무하며 회사의 보안을 책임지는 중요한 업무에 속합니다. 물론 경비업무 외에 노조탄압에 동원되기도 합니다만….

근로자 파견제도는 중간착취의 전형

그런데 이들 경비원들이 90년대 근로자파견법이 제정되면서 가장 먼저 철퇴를 맞은 직종이 됐습니다. 이들은 이제 자기가 경비업무를 보는 회사가 아닌 별도의 경비회사에 소속되어 일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들은 자신이 소속된 법적 고용회사가 어디인지 알지 못합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그쪽 회사에서 찾아오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도 이들 경비원을 모집하고 채용하고 관리하는 모든 업무를 본사에서 다 했습니다. 그 경비원이 소속된 경비회사는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습니다. 다만, 본사에서 매달 보내주는 경비원 수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고 일정액을 공제한 다음 다시 봉투에 넣어 경비원들에게 지급하는 일이 그들이 하는 일의 전부입니다. 대개 3~40% 정도를 공제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것은 일례에 불과합니다. 우리사회에는 이런 형태의 비상식적인 노동조건 속에 버려진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1,500만원 안팎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들에겐 근로기준법상 주 40시간 노동제도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근로기준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약 860만)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53.6%)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그저 통계일 뿐이고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철도공사는 즉시 KTX 해고 여승무원들을 복귀시켜야 

KTX 승무원들의 싸움은 이제 본격적인 시작일 뿐입니다. 아직 본안소송도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 근로계약 관계를 중시한 재판부의 이번 결정은 커다란 진전입니다. 그래도 세상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 보여집니다. 나아가 본안소송에서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KTX 여승무원 사건을 계기로 외주위탁,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차별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는 것입니다. 이번 사건이 비정규직을 일소하고 나아가 모든 차별을 철폐하는 사회적 연대의 시발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철도공사는 법원 결정에 따라 즉시 KTX 해고 여승무원들을 직접고용으로 복직시킬 것을 촉구합니다.

2008. 12. 3. 파비

습지와 인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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