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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58년 개띠 우리 형

58년 개띠 우리 형은 매우 재능있는 형이었다. 우선 형은 우리 동네 골목대장이었다. 형 덕에 나는 늘 왕자 대접을 받았다. 뒷산에 가면 큰 바위에 둘러싸인 산채가 있었는데, 아래쪽 바위에 움푹 패인 구멍은 나무칼, 활 등을 넣어두는 무기고이고 위에 움푹 패인 홈은 대장들 의자였다. 우리 형은 맨 위에 앉았고 나도 그 밑에 한자리 얻어 앉았었다.

형은 그림을 아주 잘 그려 전국대회에서 문교부장관상도 받은 적이 있다. 공부도 아주 잘 했다. 전교 1등이었는데 자기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에게 1등을 주고 자기에겐 2등을 주었다며 씩씩거리며 항의도 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어린이였다. 전교어린이회장도 했고 100미터 선수였으며 축구부 주장도 했다.

60이 다 돼가는 나이에도 형은 아직도 책 보길 즐긴다. 함께 아침식사를 하려고 기다리는 중에도 돋보기안경 너머로 책을 본다. 아주 훌륭한 형이다. 그리고 형은 나와는 달리 시도 아주 좋아했다. 노트에다 시인들의 시를 적고 거기에 단풍잎이나 꽃을 따 끼워두는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형이 무대뽀 같은 뱃놈이 되었다는 게 한때 믿기지 않았었다.

형은 중학교 2학년을 중퇴했다. 그러고선 시멘트공장에서 시멘트포대도 날랐고, 갱도에서 후끼야마, 사끼야마의 인생도 살았다. 내가 성장하여 공장에 다닐 땐 나를 따라 창원에 와서 잠깐 세신실업 단조공장에서 망치질도 했다. 그러다 20대 중엽의 나이에 훌쩍 경상도 땅을 떠나 목포에 가서 지금껏 뱃놈인생을 살고 있다. 형이 주로 배를 대는 곳은 비금도 아니면 도초도. 선장이다.

그 형이 요즘 많이 힘든가보다. 무슨 일인지 올 들어 갑자기 일이 꼬인단다. 올 설에도 못 만났다. 도와줄 힘이 하나도 없는 내가 비참하기도 하고 아니 비굴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형은 아직도 자기보다 동생 걱정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무슨 일인지 절대 말 안한다. 대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풀렸으면 좋겠다.